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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소리선물캠페인 시즌1 인터뷰입니다.
  • 작성일2015/09/01 00:00
  • 조회 1,237





[시즌 1 사례자 후기 ①] 딸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었어요

김○ ○ (고성, 68세)씨는 2015년 4월 구세군자선냄비본부의 지원으로 왼쪽 귀에 인공와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보청기로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이 나이에 난청 치료를 위해 수술까지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 들리지 않는 삶을 살았는데요.
「WOW 소리선물 캠페인 시즌 1」을 통해 밝은 성격을 되찾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계신 김○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어떻게 청력을 잃게 되셨나요?
제가 원래부터 못 들었던 건 아니에요.
쉰 넘어서부터 잘 안 들리기 시작했죠.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왼쪽 귀에서 진물이 흘러서 병원에 가보니 중이염이 심각한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치료를 받으며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겨 몇 달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누워만 있었더니
괜찮았던 오른쪽 귀마저 들리다 안 들리다를 반복하다 귀가 확 가버렸어요.

Q. 청력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시도는 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점점 듣지 못하니 딸 아이가 보청기를 맞춰줘서 8년동안 보청기를 끼고 생활했어요.
그런데 금방 고장 나거나 귀에 안 맞아서 8년 동안 3번을 바꿨죠.
돈은 돈대로 나가고, 그러는 사이 청력이 더 좋아진건지 작년 8월부터는 보청기로도 거의 들리지가 않더라고요.

Q. 예전부터 인공와우 수술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보청기 맞출 때나 TV 프로그램을 통해 인공와우에 대해 듣긴 했는데 제가 나이도 있고 당뇨도 있다보니 선뜻 수술 결심이 서지 않더라고요.
예전에 디스크 때문에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께서 환자분 나이가 있으니 수술 받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인공와우 수술도 저 같은 사람은 못 받는 수술인가보다 했어요.

Q. 인공와우 수술을 결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둘째 딸 아이가 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구세군 캠페인 광고 하는 것을 듣고는 제게 인공와우 수술을 해보는 건 어떤지 물어보더라고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전에 인공 심장 박동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서 몸에 기계를 넣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적었던 것 같아요.
수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다시 올까 싶어, 걱정보다는 들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수술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의사선생님이 제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수술 과정을 살갑게 설명해줬고,
딸 아이도 수술 전 검사나 입원, 재활과정에 늘 함께 해주어 편하게 수술 받을 수 있었습니다.

Q.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신 후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귀가 안 들리니 다른 곳에도 병이 오더라고요.
나이가 들면 자존감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들리지까지 않으니 우울증이 와서 그런가 봐요.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으니, 매일 집에만 있었어요.
어쩌다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꼭 딸 아이와 같이 갔고요. 
가족들에게 신세를 자주 지고 있는 상황에서 옆에 있는 영감과는 대화가 안 되고,
멀리 사는 딸들과도 전화 통화가 어렵다 보니, 혼자서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나를 싫어하는건 아닌지 피해의식과 서운한 마음이 커졌죠.
집안 대소사가 다 결정된 후에 듣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젠 다른 사람들 말을 들을 수 있고 하고 싶었던 말도 할 수 있으니 참 좋아요.
딸들도 제가 예전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위축 되는걸 많이 마음 아파했는데, 수술 후에 당당해진 점이 제일 좋대요.

Q. 인공와우 수술을 망설이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제는 수명이 많이 연장됐잖아요.
오래 사는 만큼 삶의 질도 중요한데, 그러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청력은 필수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 나이에 수술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지금은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서야 한 게 아쉬울 정도라니까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늘어나서 참 좋아요.
다른 분들도 「WOW 소리선물 캠페인」을 통해 소리 뿐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재미를 찾았으면 합니다.



[시즌 1 사례자 후기 ②] 남한에서 청력과 새 삶을 선물 받았습니다

장○ ○ (부산, 53세)씨는 북한 이탈 주민입니다.
어렸을 적 식도 수술이 잘못되어 9살 때 청력을 잃었다가, 남한에 정착하고 구세군자선냄비본부를 통해 인공와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터전인 남한에서, 소리를 들으며 그야말로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장 ○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어떻게 청력을 잃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 호기심에 만년필 안에 있는 볼펜심 철 가락지를 삼켰다가 목에 걸렸어요.
어른들께 빨리 말씀 드렸으면 됐는데, 말을 못해서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제거 수술을 받게 되었죠.
그런데 수술한 이후부터 조금씩 귀가 잘 안 들리는 거에요.
수술 부위의 신경계가 귀와 연결되어 있는데, 수술 중 신경을 잘못 건드렸던거죠.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병원은 이런 수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당사자인 저도, 수술한 사람도 뭐가 잘못된 지 모르는 사이에 귀가 멀게 된거죠.

Q. 청력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오셨나요? 
북한에도 보청기가 있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저는 한 번도 안 껴봤어요.
처음에 남한으로 넘어오면 국정원에서 여러가지 검사를 받거든요.
그 때 보청기로도 듣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희 가족을 도와주시는 관할 경찰관님께서 귀를 한 번 고쳐보자고 해서 같이 병원에 갔는데 수술하는 데 2천만원이 넘게 든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라, 귀는 영 못 고치는구나 하고 포기했죠.

Q. 어떤 계기로 인공와우 수술을 받게 되셨나요?
제가 듣질 못하니 남한 생활에 제대로 적응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죠.
담당 형사님께서 어떻게든 저를 수술 받게 해주시려고 독지가분들을 만나보셨는데,
워낙 고가의 수술인지라 지역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한 사람에게만 지원이 집중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형사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인공와우와 의료비 지원사업 등을 찾아보시다가,
인공와우 수술비를 지원하는, 그야말로 딱 맞는 구세군 캠페인을 찾게 되셔서 신청 하게 되었습니다.

Q. 인공와우 수술을 하기 전, 수술이 걱정되지는 않으셨나요?
의사선생님 실력이 뛰어나시니 구세군자선냄비본부에서 추천해 주셨을거라 믿고, 수술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다만 북한에서는 이 캠페인과 같이 민간차원에서의 기부 활동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기는 아닐까 라는 걱정을 많이 했지요.
형사님께서 캠페인 신청에서부터 수술 받을 때까지 옆에서 도와주시긴 했지만, 우리들은 남한 문화를 TV를 통해서 접하잖아요?
뉴스에서는 항상 안 좋은 사건만 나오고, 통일부에서 의료비 지원 교육받을 때에는 이런 내용을 듣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 수술을 무료로 해준다고 하니 걱정이 많이 됐죠.
지원받기 위한 절차도 저희로서는 복잡하게 느껴져 불안했고요.  
그런데 구세군자선냄비본부와 병원에서 저희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걸 알고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인공와우 수술이 아무 병원에서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병원에 한 번 오는 것도 일이더라고요.
듣지 못하니 동행자는 항상 있어야 하고, 병원 오가는 교통비며 동생이 일을 빠지고 와야 하니 형편에 부담이 많이 되더라고요.
보통 검사부터 수술까지 4~5번 정도를 올라가야 하는데, 병원에서 최대한 적게 방문해도 되게끔 스케줄 조정해주시고,
주차비나 입원 생활에 있어서도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Q.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신 후 무엇이 달라졌고, 앞으로 어떤 것들을 하고 싶나요? 
선천적으로 못 들었던 건 아니지만, 35년간 소리를 못 들었으니, 말도 거의 까먹었어요.
글은 쓸 줄 아는데 말로 대화하려면 재활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메르스 사태로 병원 재활훈련이 미뤄지긴 했지만, 집에서라도 꾸준히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수술을 통해 참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저희 가족을 옆에서 도와주시는 형사님도 애써주셨고, 수술비와 입원비, 인공와우 기기를 지원해준
구세군자선냄비본부, 그리고 지역 문화회에서는 수술 전 검사나 재활 과정에서의 경비를 지원해주셨어요. 
열심히 재활 훈련을 받아서 이번 수술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던 분들께 꼭 보답하고 싶습니다.



[시즌 1 사례자 후기 ③] 태어나 처음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선천성 난청인 김○ ○(서울, 35세)씨에게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참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2015년 3월 구세군자선냄비본부의 지원으로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후, 소리라는 처음 느껴본 감각에 점차 적응해가고 있는데요.
재활훈련과 결혼을 앞두고 희망의 나날을 보내고 계신 김○ ○씨를 만나보았습니다.

Q. 수술 전 청력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나요? 
엄마 말로는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듣지 못했대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여러 병원을 찾아가 청력 검사를 받았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30db 정도 나왔던 것 같아요.

Q. 난청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학교 다닐 때 정부에서 보청기를 지원해줬는데, 보청기를 껴도 들리지 않고 끼면 괜히 아프기만 하니 잠깐 끼다 말았어요.
농아학교를 다니다 보니 수업이나 주변사람과의 대화가 전부 수화로 진행돼서, 난청을 고치려는 노력은 특별히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Q. 인공와우 수술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인공와우 수술 전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는데 갓난아기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요즘은 신생아 청각선별검사에서 난청이라고 나오면 바로 수술을 한다는데 저 때만 하더라도 이런 검사는 없었거든요.
이번에 수술 받으면서 옆에 있는 보호자분께 여쭤보니 자기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10년 전에 수술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유치원 때 받은 청력검사에서 보청기로도 소용이 없다길래 ‘나는 못 듣는 사람인가보다.’하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는데, 예전부터 (한국에) 들어와있던 수술을 저만 몰랐던 거죠.

Q. 「WOW 소리선물 캠페인」은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떤 계기로 수술 결심을 하게 되셨나요?
장애인 지원 단체에서 일하는 제 친구가 구세군 캠페인 포스터를 보고 자기 엄마한테 이야기해서 그 아주머니가 저희 엄마한테 말씀해주셨어요.
저나 저희 엄마는 안 들릴 때 할 수 있는거라곤 보청기밖에 없는 줄 알아서 보청기로도 못 들었으니 수술을 받지 않으려고 했죠.
갑자기 못 듣게 된 것도 아닌데 이제와 수술하고 적응하는 게 힘들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캠페인 신청을 하시곤 제게 그러시더라고요.
나중에 남들이 너 이름 부르는거라도 듣고, 이 다음에 결혼하면 애기 울음소리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냐고요.
그 말에 수술을 결심하게 됐어요.

Q.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신 후, 어떠신가요?
친구들과는 수화로 대화해도 엄마랑은 글로 대화했었는데, 이제는 엄마가 부를 때 제가 반응을 할 수 있으니 엄마가 제일 편해하세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못 들었다 보니 인공와우 수술을 하고 듣는 모든 소리가 제게는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처음 인공와우를 꼈을 때는 머리가 아파서 엄마한테 신경질을 많이 냈어요.
자동차 경적 소리 정도만 겨우 들리다가 엄마가 옆에서 전화하는 소리까지 들리니 너무 시끄럽더라고요.
그런데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듣는 소리를 너도 같이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요. 
지금은 매주 언어 재활훈련과 음악치료를 받고 있고, 집에서도 엄마와 재활훈련을 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지나면 더 많은 소리를 듣고 이해할 수 있겠죠?

Q. 인공와우 수술을 망설이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도 학교를 다녔고 사회생활을 하지만 귀가 안 들릴 때는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는데 참 조용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말하는 거, 동물 소리, 바람 소리 등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리가 더해지니, 이전과는 또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수술 날짜가 잡힌 후에도 수술을 받아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기회가 된다면 다른 한 쪽도 수술을 받고 싶어요.